영월 장릉
(寧越 莊陵)
(Jangneung Royal Tomb, Yeongwol)
 대한민국사적
장릉의 전경
종목 사적 (구)제196호
(1970년 5월 26일 지정)
면적 3,495,236m2
시대 조선시대
소유 문화재청
위치
Map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 단종로 190
(영흥리 산131-1)
좌표 북위 37° 11′ 44″ 동경 128° 27′ 13″ / 북위 37.19556° 동경 128.45361°  / 37.19556; 128.45361
정보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정보

장릉(莊陵)은 조선 단종의 무덤으로, 대한민국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에 있다. 1970년에 대한민국의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2009년에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전에는 노산군묘로 불렸다가 숙종 때 능 지위로 승격되었다.

서울특별시경기도 밖에 있는 유일한 왕릉인데, 영월 호장 엄흥도가 선산에 몰래 시신을 묻었기 때문이다.[1]

역사

단종은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여 상왕이 되고, 사육신의 복위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지금의 강원도 영월 청령원에 유배되었다가, 1457년 10월 24일 17세에 사약을 받고 숨을 거두었다.

사망할 당시 고을 사람들은 후환이 두려워서 시신을 거두지 못했고 시신은 그대로 강물에 떠다녔는데, 호장 엄흥도가 을지산 현 위치에 암장하였다. 이에 따라 장릉은 추존왕의 왕릉을 제외하고, 한양으로부터 100리 이내에 모셔야 한다는 《경국대전》의 규정을 따르지 않은 유일한 왕릉이 되었다. 조선왕조 최초로 폐위된 임금의 무덤이라 능 지위가 아닌 묘 지위를 받아서 노산군묘라 지어졌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단종의 능침을 노릉(魯陵)이라 불렀다. 동국문헌명신편에는 노릉으로 기록되었고, 윤순거(尹舜擧)가 편찬한 책의 이름은 《노릉지 魯陵誌 2권》이라 명명되기도 하였다. 또한 장릉 근처에 있던 영월 보덕사는 노릉사(魯陵寺)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노릉사는 1610년(광해군 2년) 군수 김택룡이 증축하면서 노릉사를 공식 명칭으로 썼다.

그 후 중종 11년(1516년) 여러 사람의 증언으로 묘를 찾아내 지키게 했으며, 12월 15일 처음으로 치제(致祭)가 이루어졌다. 치제를 맡은 것은 우승지 신상(申鏛)으로, 김안국과 함께 파견되어 단종의 묘에 제사를 지내고 돌아온 신상은 당시 노산군(단종)의 묘는 영월군에서 서쪽 5리쯤 떨어진 길 옆에 있었는데, 봉분 높이가 겨우 두 척밖에 되지 않았고 주변에는 민간의 여러 무덤들도 가득했지만 영월 사람들은 그 무덤을 군왕의 묘라 부르며 어린아이들까지 다 알고 있었다고 한다.[2]

그 후 선조 13년(1580년) 상석, 표석, 장명등, 망주석을 세웠으며, 숙종 24년(1698년)에 비로소 단종(端宗)이라는 묘호가 올려지고 신위가 종묘에 모셔지면서, 영월에 있던 무덤도 장릉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3][4]

능의 양식은 왕명에 따라 간단하게 조성되었다. 봉분 앞에 상석(床石)과 4각옥형(四角屋形)의 장명등(長明燈)이 있으며, 망주석(望柱石) 2개, 문석(文石) 2개, 석수(石獸) 여러 개가 있다. 다른 능과 달리 단종에게 충절을 한 여러 신하들을 장릉에 배향하기 위해 장릉 밑에 충신단을 설치하였다.

비수도권 지역에 있는 유일한 조선왕릉이며 다른 조선왕릉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었다.

시설

경내에 단종비각과 재실 등이 있으며, 울창한 노송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홍살문, 정자각, 능침이 일직선으로 배치된 다른 왕릉과 달리 'ㄱ'자 형태로 조성되었다.

  • 다른 왕릉과 달리 장릉에는 충신들을 기리는 시설이 있다. 장판옥(藏版屋)과 배식단(配食壇)은 268인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다. 엄흥도 정려각은 1726년에 영조의 명으로 건립되었다.[5] 박충원 낙촌비각은 1516년에 노산묘를 찾은 영월군수 박충원을 기린다.[6]
  • 영천(靈泉): 장릉 서쪽에 자리한 우물로, 1791년 영월부사 박기정이 단종의 넋을 기리고자 만들었다.[7]
  • 단종역사관: 단종 관련 유품을 볼 수 있는 박물관으로, 2002년에 개관했다.[8]

사진

같이 보기

  • 계유정난
  • 조선의 왕릉
  • 사릉 (조선)
  • 영월 단종제례 -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22호

각주

  1. 백종현 (2026년 2월 5일). “시종들 몸 던진 그곳은 결국…영화엔 없는 단종과 영월 이야기”. 《중앙일보》. 
  2. 안현 (2026년 3월 5일). “[2026 단종 열풍] 2.영월 민초들의 ‘진심’이 응답하다”. 《강원도민일보》. 
  3. 숙종실록, 숙종 24년(1698) 11월 6일(정축) 2번째 기사
  4. “능이야기-장릉”. 문화재청. 2009년 5월 21일에 확인함.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5. 송의호 (2025년 5월 21일). “측은지심의 발현이자 선비들이 지향하는 仁·義·禮의 수범”. 《월간중앙》. 
  6. “강원도 시간여행-영월, 그 애달픈 시간으로의 유배”. 《매일경제》. 2021년 3월 1일. 
  7. 고명진 (2026년 1월 12일). “눈 속에 잠든 왕의 숨결, 장릉 영천”. 《영월인》. 
  8. “단종역사관”. 《대한민국 구석구석》. 

참고 문헌

  • 장릉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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