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이란 관계
레바논 및 이란의 위치

레바논

이란

레바논이란은 상호 공관을 두고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양국 관계는 심화되었으나, 레바논 국내와 국제 사회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2012년 글로벌 태도 조사에 따르면, 레바논 국민의 39%가 이란을 호의적으로 평가한 반면 61%는 비호의적으로 보았다. 레바논인의 62%는 이란의 핵무기 보유에 반대했으며, 57%는 핵무장을 한 이란을 위협으로 인식했다. 또한 74%는 이란에 대한 "더 강력한 제재"에 찬성했고, 46%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기 위한 군사력 사용을 지지했다. 특히 레바논 내 수니파 무슬림기독교인의 다수는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전 이란 대통령에 대해 비호의적인 견해를 보인 반면, 레바논 시아파의 95%는 그를 호의적으로 평가했다.[1]

역사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국왕 재위 시기의 이란과 레바논 관계는 두 단계로 나뉜다.[2] 첫 번째 단계는 1950년대 중반부터 1967년 6월 전쟁까지로, 이 시기 양국 관계는 이집트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의 정책에 큰 영향을 받았다. 이에 따라 팔라비 국왕은 중동에서 나세르에 반대하는 레바논 정부와 기타 국가들을 지지했다.[2] 두 번째 단계는 1967년부터 1979년까지로, 이 기간 동안 레바논에서 팔라비 국왕에 반대하는 단체들이 팔레스타인 무장 조직으로부터 훈련을 받으면서 양국 관계는 긴장 상태에 놓였다.[2]

2012년 퓨 글로벌 태도 조사에 따르면, 레바논 국민의 39%가 이란을 호의적으로 평가한 반면 61%는 비호의적으로 평가했다. 레바논인의 62%는 이란의 핵무기 보유에 반대했으며, 57%는 핵무장을 한 이란을 위협으로 인식했다. 또한 74%는 이란에 대한 "더 강력한 제재"에 찬성했고, 46%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기 위한 군사력 사용을 지지했다. 특히 레바논 내 수니파 무슬림과 기독교인의 다수는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에 대해 비호의적인 견해를 보였으며(각각 92%와 57%), 반면 레바논 시아파 무슬림의 95%는 그를 호의적으로 평가했다.[1]

시리아 내전으로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된 가운데, 2013년 11월 19일, 레바논 베이루트에 있는 이란 대사관 인근에서 두 차례의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해 이란 문화 담당 외교관을 포함한 23명이 사망했다. 이 공격에 대해서는 수니파 이슬람주의 무장 단체가 책임을 주장했다.

2024년 10월 18일, 나지브 미카티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의 발언 이후 이란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이란 특사의 소환을 요구했다. 갈리바프는 레바논과 관련된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 제1701호의 이행을 협상하는 데 테헤란이 지원할 것이라고 시사했으며, 이에 대해 미카티는 이를 레바논 내정에 대한 노골적인 개입이자 국가에 대한 통제권을 주장하려는 시도로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그는 모든 협상은 오직 레바논 국가에 의해서만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3]

정치 관계

정치적 분열

레바논에서 이란과의 관계 강화에 대한 지지는 정치적 노선에 따라 크게 양분되어 있다. 3.14 동맹은 이란과의 관계 강화를 반대하는 반면, 3.8 동맹이스라엘에 대한 균형추로서 이란과의 관계 강화를 옹호하고 있다.

정치적 지지

도하 합의의 일환으로 레바논 정부의 모든 정당이 합의에 도달한 이후, 이란의 외무장관 마누체흐르 모타키는 레바논을 방문해 해당 합의를 레바논 국민을 위한 "위대한 성과"라고 평가했다.[4]

헤즈볼라

이란은 헤즈볼라를 창설하고 자금을 지원해 왔다는 의혹을 받아 왔으며, 이러한 관계가 시리아와의 연계 속에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견해가 존재한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에 벌어진 2006년 레바논 전쟁 당시, 이란은 특히 헤즈볼라를, 더 넓게는 레바논을 강력히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2025년 2월 26일, 나와프 살람 총리가 이끄는 레바논의 신정부는 국회에서 의원 95명의 지지를 받아 신임 투표를 통과했다. 이 정부의 정책 성명에서는 과거에 헤즈볼라의 방위 역할을 정당화하던 문구가 제외되었다는 점이 주목을 받았다. 살람 총리는 2019년부터 시작된 레바논의 금융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경제 개혁과 국제 통화 기금(IMF)과의 협상 재개를 약속했다. 해당 정부는 재건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한 미국의 개입 이후인 2월 8일에 구성되었다.[5]

2025년 8월, 헤즈볼라의 무장 해제를 둘러싼 논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알리 라리자니베이루트에서 레바논 대통령 조제프 아운과 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아운 대통령은 무력을 보유할 권한은 오직 레바논 국가에만 있다며, "어떠한 무장 단체도 국가 권한 밖에서 행동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라리자니는 이란이 "레바논의 주권을 존중한다"고 밝히는 한편, 레바논의 무장 해제 추진 과정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을 비판하고 헤즈볼라를 이스라엘에 맞선 정당한 저항 세력으로 옹호했다.[6] 회담 이후 아운 대통령은 레바논의 주권에 대한 입장을 재차 강조하며, 일부 이란 관리들의 발언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어떠한 주체에 의한 내정 간섭도 거부하며, 레바논이 안전하고 안정적인 국가로 남기를 바란다"고 밝혔다.[7]

같이 보기

  • 레바논의 대외 관계
  • 이란의 대외 관계

각주

  1. A Global “No” To a Nuclear-Armed Iran. Pew Research Center
  2. Samii, Abbas William (1997). “The Shah's Lebanon policy: the role of SAVAK”. 《Middle Eastern Studies》 33 (1): 66–91. doi:10.1080/00263209708701142. 
  3. “Lebanon issues rare rebuke to Iran over 'interference'. 2024년 10월 18일. 2024년 10월 20일에 확인함. 
  4. Iran FM meets Lebanon’s heavyweights Tehran Times 27 May 2008, Retrieved 22 August 2013
  5. Bassam, Laila; Al Gebaly, Muhammed; Ehab, Yomna (2025년 2월 26일). Richardson, Alex (편집). “Lebanon's new government wins confidence vote in parliament”. 《Reuters》. 2025년 3월 4일에 확인함. 
  6. Choukeir, Jana; Elimam, Ahmed (2025년 8월 13일). “No armed groups allowed in Lebanon, president tells Hezbollah's ally Iran”. 《Reuters》. 
  7. “Client Challenge”. 《www.ft.com》. 2025년 8월 17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