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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김씨
金海 金氏
김해 김씨의 종문
나라 대한민국
관향 경상남도 김해시
시조 김수로(金首露)
중시조 김유신(金庾信)
집성촌 대한민국
경기도 성남시·세종시·포천시·양주시·용인시
경상북도 포항시·김천시·청도군[1]·상주시·경산시·구미시·안동시[2]
경상남도 창원시[3]·진주시·창녕군·김해시·사천시·남해군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4]·인제군·정선군·철원군
충청남도 부여군·금산군·공주시·논산시·보령시·아산시
충청북도 청원군·옥천군·괴산군
전라남도 진도군·신안군·해남군·영광군·완도군·나주시[5]·무안군·영암군[6]·광양시·화순군·여수시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남원시·고창군·부안군·김제시
부산광역시 남구
광주광역시 광산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7]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남도 용강군[8]
함경남도 북청군·홍원군
함경북도 나진시·경성군·명천군
주요 인물 김유, 김저, 김수연, 김극일, 김일손, 김완, 김경서, 공빈 김씨, 김예직, 김우항, 김홍도, 김만덕, 김대건, 김원근, 김두봉, 김원봉, 김상옥, 김준연, 김현철, 김철호, 김성곤, 김종오, 김대중, 김종필, 김혁규, 김주열, 김형오, 김무성, 김부겸, 김홍일, 김홍업, 김홍걸
인구(2015년) 4,456,700명 (1위)
비고 김해김씨

김해 김씨(金海 金氏)는 경상남도 김해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 관향으로, 금관가야(金官伽倻)의 건국시조 김수로왕(金首露王)을 시조로 한다.

유래

가락국김수로왕(金首露王)을 시조로 한다. 서기 42년(중국 후한 건무 18) 3월 가락국(駕洛國)의 아홉 촌장이 구지봉(龜旨峰) 산정에 모여 나라를 통솔할 군장(君長)을 얻기 위해 하늘을 향해 의식(儀式)을 올리자 하늘에서 여섯 개의 황금알(卵)을 담은 금합(金盒)이 내려와 다음날 여섯 알이 여섯 동자(童子)로 변하여 제일 먼저 나온 동자를 수로(首露)라고 이름짓고 금합(金盒)에서 태어났다하여 성(姓)을 김씨(金氏)로 하니 그가 바로 김해김씨의 시조(始祖)인 김수로왕(金首露王)이다. 나라이름을 대가락(大駕洛)으로 정하고 아유타국(阿踰陁國: 고대 인도의 국가)에서 바다를 건너온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許黃玉)를 왕비(王妃)로 맞아 10명의 왕자(王子)와 2명의 공주(公主)를 두었다. 그후 10대 구형왕(仇衡王)이 532년 (법흥왕 19) 신라에 항복하고 상등(上等)의 작위(爵位)와 가락(駕洛)을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 받았으며, 그의 아들 김무력(金武力)이 각간(角干)를 역임했다. 김해 김씨(金海金氏)는 중시조(中始祖) 김유신(金庾信)의 후대(後代)에서 가세(家勢)가 크게 번창해짐에 따라 148여개 파(派)로분파(分派)되었으며, 그 중에서 경파(京派)와 사군파(四君派)·삼현파(三賢派)·문경공파(文敬公派)의 후손들이 가장 많다.

역사

김유신 장군상

중시조 김유신(金庾信)은 가락국 마지막 왕인 구형왕(仇衡王)의 증손으로, 신라 무열왕(武烈王)과 함께 삼국통일의 대업(大業)을 달성한 명장(名將)으로 무열왕의 딸 지소부인(智炤夫人)과 혼인하며, 최고 벼슬 태대각간(太大角干)에 이르렀고, 사후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존되면서 김해김씨의 중시조가 되었다. 그의 조부는 신라 진흥왕때 뛰어난 무장(武將)이며 각간(角干) 벼슬을 지낸 김무력(金武力)이고, 그의 아버지는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장인이며 당대의 이름난 장군인 김서현(金舒玄)이고, 그의 어머니는 진흥왕의 아우인 숙흘종(肅訖宗)의 딸 만명부인(萬明夫人)이다.

김해김씨는 신라의 왕실과 혼연을 맺음으로써 신라에서 귀족으로 극진한 대우를 받아 명문거족(名門巨族)으로 번성하여 왔다. 혜공왕(惠恭王)이 피살 당해 무열왕계의 왕통이 단절되고 다른 진골 귀족들로부터도 다시금 경원 당하면서 심지어 6두품으로 추락했다.

고려시대에는 문무명신(文武名臣)을 배출한 삼한갑족(三韓甲族)으로 위세를 떨쳤다. 고려 시대에만도 정승급 15명을 비롯하여, 명신·공신 10여 명과 장군 8명, 제학 11명 등 숱한 인물을 배출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대게 조선 개국에 반대하는 고려 충신들이 많았으며 무오사화(戊午士禍)[9][10]를 비롯한 정치적 사건들에 휘말려 쇠락을 면치 못했다. 역대 정승에서도 숙종조의 김우항(金宇抗) 한 사람뿐이었다.

본관

김해(金海)는 경상남도 김해시(金海市)의 지명이다. 낙동강(洛東江) 하구 남서쪽에 위치하여 가락국(駕洛國)의 중심지로 발전하여 왔다. 532년(신라 법흥왕 19) 신라에 병합되어 금관군(金官郡)이 되었다. 680년(문무왕 20)에 금관소경(金官小京)이 되었다가, 757년(경덕왕 16) 김해소경(金海小京)으로 바꾸어 양주(良州)의 관할로 두었다. 940년(고려 태조 23) 김해부(金海府)로 개칭되었고 임해현(臨海縣)으로 다시 강등되었다가 곧 임해군으로 승격되었다. 995년(성종 14)에 김해안동도호부(金海安東都護府)로 개칭하여 영동도(嶺東道)에 속하였다가 1012년(현종 4) 김해군방어사로 강등되었으나 1018년부터는 의안군(義安郡: 昌原)·함안군(咸安郡)·칠원현(漆原縣: 漆原面)·웅신현(熊神縣: 鎭海)등을 영현으로 삼았다. 1270년(원종 11) 방어사(防禦使) 김훤이 인접지역인 밀성(密城)의 난을 평정하여 김녕도호부(金寧都護府)로 승격되었다가 1293년(충렬왕 19) 현으로 강등되었다. 1308년 금주목(金州牧)으로 승격하였으나 1310년(충선왕 2) 김해부(金海府)로 격하되었다. 1413년(태종 13) 김해도호부로 승격되어 세조 때 진(鎭)을 두었다. 1895년(고종 32) 김해군이 되었고, 1981년 김해읍이 김해시로 승격하여 분리되었으며, 1995년에는 김해군을 통합하였다.

세계도

김수로왕
金首露王
도 왕
道 王
허 씨
許 氏
하동칠불
河東七佛
성 왕
成 王
덕 왕
德 王
명 왕
明 王
신 왕
神 王
혜 왕
惠 王
장 왕
莊 王
숙 왕
肅 王
양 왕
讓 王
김탈지
金脫知
김세종
金世宗
김무력
金武力
김무득
金武得
김솔우
金率友
김서현
金舒玄
흥무대왕
興武大王
김유신
金庾信
김흠순
金欽純
김보희
金寶姬
문명왕후
文明王后
김삼광
金三光
김원술
金元述
김원정
金元貞
김장이
金長耳
김군승
金軍勝
김반굴
金盤屈
김윤중
金允中
김윤문
金允文
김 선
金 撰
김영윤
金令胤
김장청
金長淸
김 암
金 巖
김웅원
金雄元
김웅윤
金雄允
김경주
金擎柱
김성해
金成海
김성대
金成垈
김정철
金挺喆
김수윤
金琇胤
김옥윤
金玉胤
김천수
金天授
김천여
金天與
김상좌
金商佐
김 호
金 浩
김화제
金華齊
김진유
金振酉
김승의
金承意
김계의
金繼意
김진의
金進意
김천정
金天精
김항령
金恒齡
김수성
金洙聖
김상흠
金商欽
김상현
金商賢
김상인
金商寅
김성우
金成雨
김일서
金一曙
김광국
金匡國
김종백
金宗栢
김 수
金 繡
김이탁
金以琢
김서천
金瑞天
김양철
金陽喆
김시추
金是秋
김진국
金鎭國
김정국
金定國
김규상
金奎祥
김도협
金道浹
김탕우
金湯雨
김만서
金萬瑞
김사맹
金師孟
김상주
金相宙
김방직
金邦直
김용직
金龍直
김익섬
金益銛
김 관
金 管
김주국
金柱國
판도판서공파
版圖判書公派
김절경
金晢卿
김목경
金牧卿
김익경
金益卿
금녕군파
金寧君派
감무공파
監務公派

분파도

  • 경파(京派)
김목경
金牧卿
김 보
金 普
김 저
金 著
김 수
金 秀
김 난
金 蘭
김도문
金致門
김달문
金達門
김현문
金顯門
김창문
金昌門
문간공파
文簡公派
밀직공파
密直公派
평장사공파
平章事公派
김 근
金 覲
참찬공파
參贊公派
봉상공파
奉常公派
밀직사공파
密直使公派
김효원
金孝源
김효분
金孝芬
김진손
金震孫
김진서
金震敍
김영견
金永堅
김영서
金永瑞
김영정
金永貞
김영순
金永純
호참공파
戶參公派
참판공파
參判公派
횡성공파
橫城公派
안경공파
安敬公派
석성공파
石城公派


  • 사군파(四君派)
김익경
金益卿
김 시
金 蓍
김진문
金振門
김 련
金 鍊
김 추
金 錘
김 구
金 銶
김 석
金 錫
김 감
金 鑑
김 조
金 銚
생원공파
生員公派
도총관공파
都摠管公派
생원공파
生員公派
찬성공파
贊成公派
상서공파
尙書公派
공간공파
恭簡公派


  • 삼현파(三賢派)
김 관
金 管
김문숙
金文淑
김 항
金 伉
김 저
金 佇
김 서
金 湑
김 위
金 渭
김극일
金克一
김태일
金兌一
김경일
金敬一
김 건
金 建
김 맹
金 孟
김 용
金 勇
김 순
金 順
김 인
金 靭
김 현
金 鉉
김 익
金 益
김 무
金 武
군수공파
郡守公派
참판공파
參判公派
한림공파
翰林公派
진사공파
進士公派
녹사공파
錄士公派
진의공파
進義公派

분파

  • 경파(京派)[금녕군파(金寧君派)] - 김목경(金牧卿)
    • 참판공파(參判公派) - 김영견(金永堅)
    • 횡성공파(橫城公派) - 김영서(金永瑞)
    • 안경공파(安敬公派) - 김영정(金永貞)
    • 석성공파(石城公派) - 김영순(金永純)
    • 호참공파(戶參公派) - 김진서(金震敍)
    • 참찬공파(參贊公派) - 김달문(金達門)
    • 봉상공파(奉常公派) - 김현문(金顯門)
    • 밀직사공파(密直使公派) - 김창문(金昌門)
    • 문간공파(文簡公派) - 김저(金著)
    • 밀직공파(密直公派) - 김수(金秀)
    • 평장사공파(平章事公派) - 김난(金蘭)


  • 사군파(四君派)[감무공파(監務公派)] - 김익경(金益卿)
    • 생원공파(生員公派) - 김련(金鍊)
    • 도총관공파(都摠管公派) - 김추(金錘)
    • 생원공파(生員公派) - 김구(金銶)
    • 찬성공파(贊成公派) - 김석(金錫)
    • 상서공파(尙書公派) - 김감(金鑑)
    • 공간공파(恭簡公派) - 김조(金銚)


  • 삼현파(三賢派)[판도판서공파(版圖判書公派)] - 김관(金管)
    • 군수공파(郡守公派) - 김건(金建)
    • 참판공파(參判公派) - 김맹(金孟)
    • 한림공파(翰林公派) - 김용(金勇)
    • 진사공파(進士公派) - 김순(金順)
    • 녹사공파(錄事公派) - 김인(金靭)
    • 진의공파(進義公派) - 김현(金鉉)


정국(定國)계

  • 판서공파(判書公派) - 김유공(金維公)
  • 부호군공파(副護軍公派) - 김거공(金巨公)
  • 우후공파(虞侯公派) - 김옥진(金玉振)
  • 승사랑공파(承仕郞公派) - 김지서(金之瑞)
  • 부정공파(副正公派) - 김평(金平)
  • 판도판서공파(版圖判書公派) - 김첨검(金添釰)


서지(瑞地)계

  • 록사공파(錄事公派) - 김소(金炤)


상현(商賢)계

  • 판전공파(判典公派) -김명택(金明澤)
  • 판서공파(判書公派) - 김불비(金不比)
  • 좌정승공파(左政丞公派) - 김만희(金萬希)
  • 참봉공파(参奉公派) - 김인서(金鱗瑞)
  • 숭정공파(崇政公派) - 김종정(金宗貞)
  • 상서공파(尙書公派) - 김홍보(金洪寶)
  • 부호군공파(副護軍公派) - 김천익(金天翼)
  • 판결사공파(判決事公派) - 김을동(金乙棟)
  • 단련사공파(團鍊使公派) - 김경(金慶)
  • 진사공파(進士公派) - 김건(金虔)
  • 좌윤공파(左尹公派) - 김국담(金國潭)
  • 충정공파(忠精公派) - 김이장(金以障)


상인(商寅)계

  • 참봉공파(叅奉公派) - 김청유(金淸有)
  • 유수공파(留守公派) - 김운(金芸)


진의(進意)계

  • 운은공파(雲隱公派) - 김대진(金大震)
  • 율은공파(栗隱公派) - 김손(金遜)
  • 승지공파(承旨公派) - 김간(金侃)
  • 문경공파(文敬公派) - 김탁(金琢)
  • 부사공파(府使公派) - 김근(金瑾)
  • 한림공파(翰林公派) - 김관(金王+寬)
  • 충정공파(忠貞公派) - 김구(金球)
  • 도사공파(都事公派) - 김연(金璉)
  • 승정공파(承政公派) - 김현(金現)
  • 휴은공파(休隱公派) - 김호(金琥)
  • 장사군파(長沙郡派) - 김선(金璘) → 무장 김씨
  • 도사공파(都事公派) - 김린(金璘)
  • 대제학공파(大提學公派) - 김득하(金得河)
  • 동정공파(同正公派) - 김호(金灝)
  • 금성군파(金城君派) - 김도(金濤)
  • 도총관공파(都總管公派) - 김경신(金敬臣)
  • 판윤공파(判尹公派) - 김경보(金敬輔)


천여(天與)계

  • 충경공파(忠景公派) - 김대리(金大理)
  • 첨정공파(僉正公派) - 김덕휴(金德休)

항렬자

  • 경파(京派, 파조로 1세, 시조로 1세)
  • 사군파(四君派, 파조로 1세, 시조로 1세)
  • 삼현파(三賢派, 파조로 1세, 시조로 1세)
  • 시중공파(侍中公派, 파조로 1세, 시조로 1세)
  • 도총관공파 서강공파(都總管公派 西岡公派, 파조로 1세, 시조로 1세)
  • 도총관공파 축은공파(都總管公派 築隱公派, 파조로 1세, 시조로 1세)
  • 좌정승공파(左政丞公派, 파조로 1세, 시조로 1세)
  • 율은공파(栗隱公派, 파조로 1세, 시조로 1세)
  • 동정공파(同正公派, 파조로 1세, 시조로 1세)

과거 급제자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문과 128명, 무과 536명, 사마시 471명, 역과 59명, 의과 39명, 음양과 15명, 율과 33명, 주학 8명이다.

대표적 인물

신라ㆍ고려
  • 김무력(金武力): 가야국 제10대 구형왕(仇衡王)의 셋쩨 왕자이다. 신라 신주군주(新州軍主)와 각간(角干)을 역임했으며, 관산성 전투 승리하였다.
  • 김서현(金舒玄): 신라 대량주총관(大良州總管)과 각간(角干)을 역임했다.
  • 김유신(金庾信): 삼국 통일을 이끈 명장이다. 신라 태대각간(太大角干)을 지냈으며, 사후 '흥무대왕(興武大王)에 추존되었다.
  • 김흠순(金欽純): 신라 대당 총관(大幢摠管)이며, 삼국 통일의 공신이다.
  • 김삼광(金三光): 신라의 대당 군사외교가이다.
  • 김반굴(金盤屈): 신라 무열왕 때의 화랑이다. 황산벌 전투에서 홀로 적진에 뛰어들어 전사하였다.
  • 김시득(金施得): 신라 문무왕 때 수군지휘관이다. 기벌포(伎伐浦)에서 설인귀(薛仁貴)의 당군을 격퇴하였다.
  • 김원술(金元述): 매소성(買肖城)에서 당군과 전투에서 승전을 이끈 장수이다.
  • 김영윤(金令胤): 신라 신문왕 때 장군으로 고구려 잔적(殘賊) 보덕성(報德城)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황금서당보기감(黃衿誓幢步騎監)으로 토벌하다 장렬히 전사하였다.
  • 김암(金巖): 신라 중대의 무관이자 방술가이다.
  • 김웅원(金雄元): 완산주도독(完山州都督)을 지냈으며, 순천장군으로 당나라 이사도(李師道)의 난과 김헌창(金憲昌)의 난을 평정한 장군이다.
  • 김천수(金天授): 신라 효공왕 11년에 시중(侍中)으로 당에 파견되어 황소의 난을 만나 전사하였다. 사후 대각간(大角干)에 봉했다.
  • 김상좌(金商佐): 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를 개국하고 삼중대광(1품관)를 지냈다.
  • 김호(金浩): 한림학사와 좌간의대부(정4품), 대학사(종2품) 역임을 했다. 101세까 장수하였다.
  • 김진유(金振酉): 광정대부ㆍ도첨의중찬ㆍ수문전대제학ㆍ판전리사사ㆍ세자사를 지냈으며, 광종이 과거제 시험담당관을 승려 혜거(惠居)를 임명하자 반대했지만 왕이 듣지 않아 금마저에 은거했다.
  • 김승의(金承意): 검교신호위상장군(撿校神虎衛上將軍)을 지냈으며, 승려 혜거를 쫓아내려했으나 파직 당했다.
  • 김천정(金天精): 벼슬은 병부상서를 지냈으며, 거란에 가서 화친을 청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 김택정(金澤精): 삼중대광ㆍ문하시중
  • 김항령(金恒齡): 검교신호위상장군(撿校神虎衛上將軍)으로 여진족과의 전투에 참전하였고 태평산에 은거하였다.
  • 김수성(金洙聖): 벼슬은 호부상서를 지냈으며, 강감찬(姜邯贊) 장군과 함께 여진족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 김상흠(金商欽): 고려 현종 때에 대사성(大司成). 최치원(崔致遠) 문창후(文昌候)에 봉하고 최치원의 부인을 선성묘에 모시라는 상소를 올리고 이후에 금주백(金州伯)에 봉해졌고 대제학이 되었다.
  • 김경신(金敬臣): 충렬왕 때 진변총관부군총관(鎭邊總管部軍總管)을 지냈다.
  • 김원현(金元鉉): 충렬왕 때 광정대부 첨의평리 상호군 영부사(匡靖大夫僉議評理上護軍領府事)을, 충선왕 때 양산방어사(梁山防禦使)로서 왜적(倭賊)을 물리친 공으로 양산춘추원(梁山春秋園) 장충단(奬忠壇)에 삼조의열(三朝義烈)로 배향
  • 김수(金繡): 검교신용호위상장군(檢校神龍虎衛上將軍)으로 왕의 밀유(密諭)로 이자겸(李資謙)을 영광으로 유배시켰다.
  • 김이탁(金以琢): 고려 의종정중부(鄭仲夫)가 난을 일으켜 사대부를 모조리 살해해 시체가 길거리에 가득 차자 시신을 수습하기를 청하다 정중부 일당에게 살해 당했다.
  • 김서천(金瑞天): 경대승(慶大升) 장군과 함께 정중부를 죽여 부친의 원수를 갚았다.
  • 김목경(金牧卿): 충혜왕(忠惠王) 때 조적(曺頔)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금녕군(金寧君)에 봉해졌다. 국사(國事)가 날로 어지러워짐을 보고 정당문학 이조년(李兆年)과 함께 누차 왕에게 간했으나 듣지 않자, 속리산(俗離山)에 들어가 세상과 인연을 끊고 미록(靡鹿)과 벗하여 여생을 마쳤다고 한다.
  • 김보(金普): 공민왕 때 수종공신(隨從功臣)에 녹훈되며,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 수시중(守侍中) 등을 지낸 문신.
  • 김유(金庾) : 공민왕 때 강릉도병마사(江陵道兵馬使)가 되어 홍건적을 대파하여 이듬해 서울을 수복한 공으로 이등 공신, 김용(金鏞)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일등 공신이 되었다.
  • 김선(金璇): 고려 공민왕 때 공을 세워 장사군(長沙君)에 봉해졌다.
  • 김관(金管): 판도판서를 역임하고 유학을 진흥하는데에 큰 역할을 하였다.
  • 김구(金球): 단성수의동덕보리공신(端誠守義同德輔理功臣)에 녹훈되며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 김만희(金萬希): 조선 개국 후 출사를 거부하고 제주에 유배 되어, 애월읍 곽지리에 은거한 절신(節臣).[11]
  • 김탁(金琢): 고려 문하시중. 최유의 난을 평정하여 공민왕 때 추성양절동덕협의찬화공신(推誠亮節同德協義贊化功臣) 삼중대광(三重大匡)에 봉해졌으며, 도첨의문화시중을 지냈다.
  • 김소(金炤): 고려 공양왕 때 녹사(錄事)를 지내고, 선죽교(善竹橋)에서 정몽주(鄭夢周)와 함께 이방원이 보낸 하수인 조영규에게 피살되었다.
  • 김손(金遜): 시중 최영(崔瑩)의 생질. 폐왕 우왕을 만나 이성계를 살해하라는 부탁을 받고, 이성계의 집에 잠입하여 암살하려다 실패해 ‘김저의 옥사’가 일어났다.
  • 김방려(金方勵): 판종부사(判宗簿事). 정몽주(鄭夢周)와 이인임의 친원 정책에 반대하다가 김해 퇴은에 유배되었다. 위화도 회군이성계(李成桂)를 도와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웠다.
조선
  • 김조(金銚): 세종 때 집현전수찬을 거쳐 예조판서에 올랐으며, 직제학에 역임할 때 장영실(蔣英實)과 함께 간의대, 자격루, 혼천의 등을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 김계희(金係熙): 1441년(세종 23) 생원(生員)이 되고, 예문관 검열(藝文館 檢閱)을 거쳐 나주목사(羅州牧使)가 되고 이어서 이조참판(吏曹參判)·한성부윤(漢城判尹) 등을 지냈으며, 단종이 쫓겨나자 벼슬을 버리고 음주양광(飮酒佯狂)하고 낙향하여 퇴은정(한림정)을 짓고 갈건(葛巾)·야복(野服)을 입으며 여생을 보냈다. 나주목사(羅州牧使)로서는 선정을 베풀어 사후에 보(寶)를 세우고 매년 명륜당(明倫堂)에서 제사를 지냈다.
  • 김계금(金係錦): 조선전기 권지학유(權知學諭) 지냈다. 사육신 사건 이후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사람들이 그를 육신(六臣)에 하나 더한다는 뜻으로 육일거사(六一居士)라 불렸다.
  • 김수연(金壽延): 조선 전기 장군으로 김종서 등과 더불어 6진을 개척하고 계유정난으로 단종이 유배지 영월에서 비참하게 죽자 6일간 단식 끝에 자결한 충신이다.
  • 김극검(金克儉): 조운사 함우치(咸禹治)의 종사관으로서 경상도 연안의 군자미 10만 석을 함길도로 운송하는 공로를 세웠으며, 『세조실록』, 『예종실록』 수찬의 공로로 포상을 받았으며, 연산군 때 지중추부사 이르렀다.
  • 김자정(金自貞): 조선 전기의 문신. 단종·세조·성종·연산군 대에 여러 관직을 지냈으며, 중국어에 능통하여 외교업무를 능숙하게 수행하였다.
  • 김호인(金好仁): 세조 때 원종공신 2등에 녹훈되었으며, 절제사 양정(楊汀)휘하에서 여진족을 토벌한 공으로 포상을 받고 북청부사와 대마도 경차관, 제주목사 등을 역임했다.
  • 김극일(金克一): 어릴 때부터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님 봉양하였고,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시묘살이를 할 때 호랑이가 옆을 지키는 등 효행으로 명성을 떨쳤다. 세종때 효자정려(孝子旌閭)가 건립되고 사시(私諡)는 절효(節孝)이다.
  • 김수광(金秀光): 약관에 문과에 급제하고, 세조 때 경상도사를 거쳐 양사헌납과 봉상시정을 역임하고 연산군의 폭정으로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다. 조정에서 한림원태학사로 불렀으나 나가지 아니하고 금서(琴書)를 벗삼아 여생을 마쳤다.
  • 김일손(金馹孫): 춘추관 사관(史官)으로 있으면서 《성종실록》을 편찬할 때에, 이극돈의 비행(非行)을 그대로 쓰고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실었다고 하여 무오사화 때에 처형되었다.
  • 김귀(金龜): 벼슬이 의정부좌참찬(議政府左參贊)에 이르렀으나 이극돈(李克墩)의 모함으로 창원에 유배되었다.
  • 김대유(金大有): 기묘사화가 일어나 칠원현감(漆原縣監)을 마지막 벼슬로 사직하고 청도의 운문산에 들어갔다.
  • 김예직(金禮直): 광해군(光海君)의 외숙부로 함경도병마절도사(咸鏡道兵馬節度使), 포도대장(捕盜大將),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를 역임했다.
  • 김수원(金秀源): 임진왜란때 내금위장으로 (內禁衛將) 선조의주(義州)까지 호종한 공으로 호성공신(扈聖功臣)에 올랐고 가성군(伽城君)에 봉해졌다.
  • 김연광(金鍊光): 회양부사(淮陽府使)로 있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 끝까지 회양성을 지키다 순절했다.
  • 김축(金軸):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솔과 후학을 거느리고 김천일(金千鎰)의 막하에서 활약하다 이듬해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했다.
  • 김사모(金嗣牟):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부사 송상현(宋象賢)의 부장으로 동래성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 김세근(金世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금산 전투에서 고경명(高敬命)과 함께 순절했다.
  • 김인갑(金仁甲): 철산부사(鐵山府使)로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전투에서 최경회(崔慶會) 등과 함께 전사해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올랐다.
  • 김경서(金景瑞): 임진왜란평양성 탈환에 큰 공을 세웠고, 명나라의 요청으로 강홍립(姜弘立)과 후금 정벌 위해 출전하여 심하(深河)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 김득진(金得振): 부차(富車)에서 지자 분노하여 죽으려 하였으나, 대가 끊긴다는 아버지의 꾸중을 듣고 돌아왔다. 이괄의 난 때 공을 세웠고, 정묘호란 때는 조방장으로 활약하였다. 자산군수로 있을 때, 후금의 사신이 온 것을 보고 울분이 터져 피를 토하고 죽었다.
  • 김극희(金克禧): 명사수로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막하에서 전공을 세우고, 한산도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 김현성(金玄成): 광해군 때 시·서·화에 두루 능하였는데, 그림보다는 글씨에 뛰어났으며 특히 시에 능하였다고 한다. 대표작으로 이충무공수군대첩비문(李忠武公水軍大捷碑文)이 있다.
  • 김완(金完): 임진왜란 때에 남원대첩에 전공을 세우고, 이괄의 난을 평정할 때 벽동(碧潼)의 성(城)을 사수한 명장이다.
  • 김광립(金光立): 이괄의 난 때 안주목사(安州牧使)로 도원사(都元師) 장만(張晩)을 따라 전공(戰功)을 세우고 진무원종훈(振武原從勳)에 참여되고, 병자호란에 동래수사(東萊水使)로 관군 수천을 거느리고 청주(淸州)에 이르러 화의(和議)가 이루어짐을 듣고 돌아왔다.
  • 김여준(金汝峻): 병자호란청나라에 볼모로 가는 왕자들을 호종한 무신. 중국 심양(瀋陽)에 갈 때 옥하관(玉河關)에서 「월명비안(月明飛雁)」의 시를 읊었다.
  • 김덕승(金德承): 여러 벼슬을 거쳐 목사(牧使)에 이르렀는데, 경사(經史) ·운서(韻書)를 연구하여 중국어에 능통했고, 글씨와 그림에도 능했다.
  • 김우항(金宇杭): 조선 숙종 때 우의정. 신임사화로 폐출된 노론 4대신의 누명을 항소하고, 김일경(金一鏡)의 사친추존론(私親追尊論)을 적극 반대하다가 화를 입었고, 평생을 청빈하게 살아 사람들로부터 장자(長子) 또는 완인(完人)이라 불렸다.
  • 김천택(金天澤): 조선 후기의 시인. 평민 출신으로서 <해동가요(海東歌謠)>를 남기고 「청구영언(靑丘永言)」을 편찬한 인물.
  • 김홍도(金弘道): 조선 영조 때 풍속화의 대가. 도화서 화원이 된 후 왕세손의 초상화를 그렸으며, 정조의 어진(御眞)을 그렸다.
  • 김만덕(金萬德): 제주도의 거상. 제주도에 흉년이 들자 자신의 전 재산으로 육지의 곡식을 구매하여 백성들을 구휼하였다.
  • 김대건(金大建): 우리나라 최초의 가톨릭교회 신부. 마카오에서 신학을 배우고 조선에서 선교활동을 하다 1846년 병오박해로 순교하였다.
근현대
  • 김근배(金根培): 1866년 병인양요가 일어나 「토적의거격문(討賊義擧檄文)」을 짖고 1906년 성균관(成均館) 박사(博士)가 되었으나 1908년 단발령에 반발해 나주·김제·옥구 등지에서 은거했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고 일제가 지역의 원로들과 지식인들을 포섭하기 위해 은사금(恩賜金)을 교부할 때 수령을 거부하고 유서와 절명시를 남기고 1910년 12월 13일 돌을 끌어안고 자신의 집 우물에 투신하여 자결 순절하였다. 1931년 익산 매곡사(梅谷祠)에 배향되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 김제환(金濟煥): 일제의 국권침탈에 항거하여 민적등록과 세급납부, 토지측량 등 거부운동을 나서고 의거를 주도하다 옥고를 치르고 단식투쟁으로 순절한 애국지사이다.
  • 김규식(金圭植): 1907년 허위 의병부대에 참가, 1919년 대한독립선언서 서명, 1920년 북로군정서 소속으로 청산리 전투 참가, 1922년 고려혁명군 총사령관, 1925년 신민부 참가, 1927년 신민부 군사부 위원, 1926년 고려혁명당 중앙위원, 1930년 한국독립당 부위원장,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 김도규(金道珪): 1907년 보성에서 안규홍(安圭洪) 의병부대에 참여해 부장(副將)으로 활약하며 보성·장흥·순천 등지에서 항일 전투를 전개했다. 1908년 5월 운월치(雲月峙) 전투에서 일본군 장교를 사살하였으며, 같은 해 8월 진산(眞山)에서 일본 헌병대를 습격하여 큰 전공을 세웠다.
  • 김인전(金仁全): 1919년 전북지방에서 3·1운동을 지도하며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이후 신한청년당 재무부장을 맡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재무부 비서국장 겸 임시공채관리국장, 학무부 차장으로 활동하였다. 인성학교 교장을 지내며 교육을 통한 민족 계몽에 힘썼고, 태평양회의외교후원회 재무서기로 외교 활동을 지원하였다. 또한 임시의정원 의장과 의원, 중한호조사 간사, 한국노병회 이사, 국민대표회의 전북 대표를 하였다.
  • 김원근(金元根): 학교법인 청석학원(淸錫學園) 설립자이다. 조치원(鳥致院)에서 상업을 경영하며 연청학원(燕淸學院)과 대성보통학교(大成普通學校)를 세우고 흉년마다 구휼에 힘썼다. 청주상업학교(현 대성고), 청주여자상업학교(현 대성여자상고)를 설립하고 광복 후 청주상과대학(현 청주대)을 설립하는 등 충북 사학의 기틀을 마련했다. 청주 여러곳에는 그의 구휼 사업을 기려 세운 구제비와 진휼비가 있다.
  • 김두봉(金枓奉): 한글 연구로 『조선어문전』·『깁더조선말본』 편찬에 참여한 언어학자다. 3.1운동 참가 후 상해로 망명해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하고 고려공산당 총무국 간부로 활동하며, 의열단장 김원봉과 한국민족혁명당을 결성하고 조선의용대를 창설하였다. 조선독립동맹의 주석으로 중국을 누빈 연안파의 거두이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초대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이다.
  • 김일두: 1910년 중국 베이징으로 망명해 의학을 수학하고 만주·블라디보스토크·상하이를 오가며 임시정부 교통국에서 활동했다. 군자금 모집과 독립군 기지 건설을 추진하다 두 차례 투옥되어 옥고를 치렀다. 198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김시범: 1919년 3월 21일 제주 조천면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며, 체포돼 징역 1년을 살고 출옥 후 동미회 결성, 소비조합 운동에도 참여했다. 광복 후 조천면장·건준 초천면위원장·민전 제주도부의장을 지냈고, 1948년 부인과 함께 의문사를 당했다. 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 김명권(金明權): 소학교 졸업 후 기독교에 입교해 장로가 되었고, 1919년 덕천 송산교회 중심으로 두 차례 만세 시위를 조직한 뒤, 만주로 이주해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을 가입해 군자금 모집을 맡아 국내에 잠입, 덕천 일대에서 동지 규합과 무기 전달을 수행했다. 1921년 일본 경찰과의 교전에서 순사 1명을 사살하는 등 무장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1922년 체포되어 1923년 평양형무소에서 순국했다.
  • 김상옥(金相玉): 1923년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으로 효제동 시가전에서 단신으로 수백 명의 일제 군경과 맞서 싸우다 순국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 김명식(金明植): 1916년 동경 조선인유학생학우회 간사부장·회장으로 활동하며 2·8독립선언을 주도했다. 1920년 조선노동공제회를 조직하고 1921년 고려공산당(高麗共産黨) 참가, 1922년 1월 신생활사 주필로 사회주의 사상을 선전하다 필화사건으로 투옥되어 옥고를 치러 고문 후유증을 겪었고 1927년 신간회 제주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99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 김대지(金大池): 1913년경 일합사를 결성하고 광복단에 참여하며 항일투쟁을 시작했다. 1919년 임시의정원 의원과 임시정부 내무부 위원으로 활동했다. 의열단 창단을 지도하고 1920년 제1차 국내 의거를 지원했으며, 이후 김원봉의 고문으로 전략을 자문했다. 베이징 군사통일촉성회에서 활동했다.
  • 김석황(金錫璜): 1919년 2·8독립선언 참가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사료편찬회 참여, 임시의정원 의원, 1920년 1월 대한민국의용단(大韓民國義勇團) 결성, 8월 평안남도청 폭파 의거로를 참여하다 징역 10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겪었다.
  • 김원봉(金元鳳): 의열단을 조직하여 일제에 항거하였고, 광복군 부사령관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장 등을 지냈다.
  • 김준연(金俊淵):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사직. ML당사건으로 투옥된 독립운동가, 광복 후 초대 법무부 장관ㆍ제헌의원ㆍ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 김현철(金顯哲):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미위원, 광복 후 부흥부농림부재무부 장관을 지냈고, 내각수반을 역임하였다.
  • 김영현(金寧炫): 수원고등농림학교 재학 중 항일 계몽활동으로 퇴학당했다. 1928년 만주로 망명해 무기·군자금 모집 등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1932년 간도 일본영사관 습격 후 체포돼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44년 옥중 순국하였다.
  • 김영랑(金永郞): 휘문의숙 재학 중 3·1운동이 일어나 고향 강진에서 거사를 하려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고, 1930년 정지용과 함께 박용철이 주재하던 〈시문학〉 동인으로 참여하여 〈독(毒)을 차고〉·〈모란이 피기까지는〉 등의 시를 쓴 시인이다. 광복 후 대한청년단 단장과 공보처 출판국장 등을 지냈다. 2008년 금관문화훈장, 2018년 건국포장을 추서되었다.
  • 김기추(金基秋): 청년동맹 위원장, 신간회(新幹會) 활동, 만보산(萬寶山) 사건 뒤 만주로 망명했다. 광복 후 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했다가 투옥되어 불교에 귀의해 수행자의 길로 들어섰다. 보림선원(寶林禪院)을 중심으로 재가불교와 선수행을 이끌며 금강경(金剛經) 강의와 선풍을 확산시켰다.
  • 김승곤(金勝坤): 1933년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수료, 1934년 중국군관학교 뤄양분교에서 훈련, 1935년 민족혁명당 검사국 및 특무부 활동, 1938년 조선민족전선연맹 산하 조선의용대 가입 활동, 1941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참여, 1943년 임시정부 국무원 비서, 같은해 12월 한국광복군 입대하였다.
  • 김주열(金朱烈): 3·15 의거에서 희생된 민주열사.
  • 김철호(金喆浩): 기아그룹 창업주.
  • 김성곤(金成坤): 제4·6·7·8대 국회의원이자 쌍용그룹 창업주.
  • 김환기(金煥基): 대한민국의 화가. 「향(響)」, 「월광」, 「영원의 노래」, 「산월」, 「무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등의 작품을 그렸다. 1978년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 김종오(金鍾五): 한국전쟁 제6보병사단의 춘천-홍천 전투, 제9보병사단의 백마고지 전투 에서의 맹활약하고, 제15대 육군참모총장, 제8대 합동참모의장을 역임하였다.
  • 김오랑(金五郞): 특전사령관 정병주의 비서실장으로 12.12 군사 반란 중 순국하였다.
  • 김대중(金大中): 제15대 대통령, 분단이후 최초로 남북정상회담과 6.15남북공동선언을 이끌어 대한민국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 김성은(金聖恩): 제4대 해병대사령관, 제15대 국방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 김종필(金鍾泌): 중앙정보부 초대부장, 제11·31대 국무총리
  • 김일(金一): 프로레슬링 선수
  • 김용철(金容喆): 제9대 대법원장
  • 김지하(金芝河): 대한민국의 시인.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 , 『화개』 등 작품이 있다.
  • 김상곤(金相坤): 제16·17대 경기도교육감과 문재인 정부사회부총리교육부 장관 등을 역임하였다.
  • 김무성(金武星): 제15·16·17·18·20대 국회의원,제47대 내무부 차관, 제2대 새누리당 대표
  • 김부겸(金富謙): 제16·17·18·20대 국회의원, 문재인 정부행정안전부 장관, 제47대 국무총리를 역임하였다.
  • 김기현: 제17·18·19·21·22대 국회의원, 제6대 울산광역시장, 제2대 국민의힘 대표

유적지

숭선전
구분 인물 소재지
숭선전(崇善殿) 수로왕(首露王)·허왕후(許王后) 경남 김해시 왕릉길 26
숭안전(崇安殿) 가락국 2~9대 왕 경남 김해시 왕릉길 26
덕양전(德讓殿) 양왕(讓王)·계화왕후(桂花王后) 경남 산청군 금서면 동의보감로 995
숭무전(崇武殿) 김유신(金庾信)·지소부인(智炤夫人) 경북 경주시 흥무로 71
은월사(隱月祠) 김무력(金武力)·김서현(金舒玄) 울산 남구 중앙로 280번길 5
취서사(鷲棲祠) 김무력(金武力)·김서현(金舒玄)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로 204
서악서원(西岳書院) 김유신(金庾信) 경북 경주시 서악2길 23
제동서원(濟東書院) 김유신(金庾信) 경북 군위군 효령면 장군당1길 35-1
길상사(吉祥祠) 김유신(金庾信) 충북 진천군 진천읍 문진로 1411-38
화부산사(花浮山祠) 김유신(金庾信)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율곡로 2967
보령원(保寧院) 김유신(金庾信) 전북 부안군 상서면 봉은길 90-5
금산사(金山寺) 김유신(金庾信) 경기 화성시 팔탄면 창곡리 언창길 52-19
남악사(南岳祠) 김유신(金庾信) 경남 진주시 금곡면 죽곡길 102
부풍사(扶風祠) 김유신(金庾信)·김일손(金馹孫)·김우항(金宇杭) 충남 부여군 규암면 백제운로7
장렬사(壯烈祠) 김유신(金庾信)·김일손(金馹孫)·김광립(金光立) 광주 북구 동문대로 112번길 99
완산사(完山祠) 김유신(金庾信) 전북 전주시 완상구 빙고리1길 5-2
화산재(華山齋) 김목경(金牧卿) 경북 상주시 화북면 계석동길 23
도유재(道有齋) 김보(金普) 경북 영천시 북안면 도유길 146-1
영모사(永慕祠) 김도문(金到門)·김근(金瑾)·김효분(金孝芬)·김진손(金震孫)·김영견(金永堅) 경기도 남양주시 석실로 592번길 77-40
운학재(雲鶴齋) 김영서(金永瑞) 경기 처인구 운학로115번길 22-3
용안사(龍安祠) 김영정(金永貞) 강원 원주시 귀래면 용암동막길 43-14
금병재(錦屏齋) 김영순(金永純) 경남 김해시 장유면 태정2길 30
금소재(金巢齋) 김세응(金世應)·김명수(金明壽)·김학(金鶴)·김조언(金朝彦) 전남 화순군 이양면 쌍산의로 128
백암재(白巖齋) 김익경(金益卿) 전남 영암군 서호면 선사주거로 232
구고사(九皐祠) 김진문(金振門)·김조(金銚)·김완(金完)·김여준(金汝峻)·김여옥(金汝沃) 전남 영암군 서호면 화소길 20
운호사(雲湖祠) 김극희(金克禧)·김함(金涵)·김완(金完)·김여준(金汝俊)·김여옥(金汝沃) 전남 영암군 서호면 꿈바다길 125-19
저산서원(楮山書院) 김관(金管)·김문숙(金文淑)·김항(金伉) 경남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유등로332번길 42-7
자계서원(紫溪書院) 김극일(金克一)·김일손(金馹孫)·김대유(金大有) 경북 청도군 이서면 자계서원길 17-7
모암재(慕庵齋) 김서(金湑)·김극일(金克一)·김건(金健) 경북 청도군 각북면 뚝향길 81
영모재(永慕齋) 김맹(金孟)·김일손(金馹孫) 경북 청도군 이서면 행정명곡길 10-19
긍구정(肯構亭) 김용(金勇) 경북 경산시 압량읍 내리길25길 10
죽곡재(竹谷齋) 김순(金順) 경남 김해시 진영읍 서부로137번길 13-2
삼락재(三樂齋) 김인(金靭) 경북 경산시 자인면 옥천길 65
유현재(惟賢齋) 김대유(金大有) 경북 청도군 매전면 청려로 3926-15
경모재(敬慕齋) 김탁(金琢) 광주 광산구 기곡길 159-18
용강재(龍崗齋) 김수연(金壽延) 전남 나주시 대호동 262-5
추모재(追慕齋) 김경신(金敬臣)·김원현(金元鉉)·김방려(金方勵)·김순생(金荀生)·김태덕(金台德)·김계희(金係熙)·김강의(金剛毅) 부산 강서구 상덕로119번길 139-15
미양서원(薇陽書院) 김계금(金係錦) 경남 김해시 진영읍 진영로 430-16
의열사(義烈祠) 김계금(金係錦)·김일개(金一介)·김일덕(金一德)·김일성(金一誠)·김학(金學) 부산 기장군 철마면 와여1길 28-21
월파정(月波亭) 김극검(金克儉)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김해대로 581-15
사현사(四賢祠) 김방려(金方勵)·김계희(金係熙)·김극검(金克儉)·김혼(金渾) 전남 장흥군 안양면 용안로 709-28
충렬사(忠烈祠) 김경서(金景瑞) 평안남도 용강군 양곡면 남동리 북위 38° 50′ 15″ 동경 125° 21′ 00″ / 북위 38.83750° 동경 125.35000°  / 38.83750; 125.35000
표절사(表節祠) 김손(金遜)·김전(金鈿)·김두(金㺶) 경북 예천군 보문면 미호길 163-14
구산단(龜山壇) 김소(金炤)·김박(金珀)·김승간(金承幹) 전남 화순군 도곡면 미곡리
좌정승공파 입도조묘역 김만희(金萬希) 제주 제주시 애월읍 곽지리 788-1
금호재(琴湖齋) 김불비(金不比) 경남 창원시 의창구 동읍 동읍로835번길 80
추모재(追慕齋) 김을동(金乙棟) 경북 경주시 배반동
운곡재(雲谷齋) 김인서(金鱗瑞) 경남 밀양시 부북면 덕곡1길 40-3
농암사(農巖祠) 김연(金璉) 전남 영암군 영암읍 남풍리 247-1
종산재(鍾山齋) 김호(金琥) 전남 화순군 도곡면 덕리길 155
추모재(追慕齋) 김린(金璘) 군산시 서수면 관원리 산 160-3
호계사(虎溪詞) 김영간(金永幹) 전남 장흥군 장동면 만수길 25-93
지둔사(芝屯祠) 김희철(金希哲)·김예직(金禮直) 강원 원주시 귀래면 용암리 360-3
어사각(御賜閣) 김축(金軸)·김기남(金起南)·김두남(金斗南)·김지남(金志南)·김흥립(金興立)·김덕립(金德立)·김효립(金孝立) 전북 고창군 고창읍 모양성로 76
송촌사(松村祠) 김사모(金嗣牟)·김억명(金億命)·김억룡(金億龍)·김억호(金億虎) 전남 영광군 군서면 성지로 497
충덕사(忠德祠) 김우항(金宇杭) 충남 부여군 규암면 호반로87번길 66
두산서당(斗山書堂) 김석견(金石堅) 경북 경주시 문무대왕면 송전리 149-1
도남서원(道南書院) 김귀(金龜) 경남 창원시 의창구 동읍 동읍로401번길 68
금성사(金城祠) 김도(金濤) 경남 울주군 온산읍 거남2길 5-5

조선 왕실과의 인척 관계

  • 선조의 후궁 공빈 김씨
  • 선조의 후궁 순빈 김씨
  • 인평대군(인조의 3남)의 첩 김씨(김세기의 딸)
  • 헌종의 후궁 숙의 김씨
  • 철종의 후궁 숙의 김씨

인구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성씨이며, 김씨 중에서도 가장 많은 41.7%를 차지하고 있다. 2000년 서울 81만 5천 783명, 부산 40만 7천 41명, 대구 19만 9천 252명, 인천 20만 7천 736명, 광주 14만 8천 736명, 대전 9만 6천 887명, 울산 10만 4천 627명, 경기 71만 8천 661명, 강원 10만 7천 612명, 충북 8만 6천 978명, 충남 14만 151명, 전북 17만 3천 712명, 전남 26만 8천 525명, 경북 23만 7천 826명, 경남 35만 12명, 제주 6만 1천 395명이다. 부산과 경남지역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2000년 4,124,934명, 2015년 4,456,700명으로 조사되었다.

구분

가야 수로왕계 김해 김씨 선김(先金)과 신라 김렴계 김해 김씨는 김해 김씨 후김(後金) 또는 김녕 김씨(金寧 金氏)로 구분한다. 또는 사성 김해 김씨는 우록 김씨(友鹿金氏)라고 한다.

분적

동조 이성 이본

  • 허씨 - 가락국 수로왕비 허황옥(許黃玉)을 연원으로 삼는 성씨다. 본관은 김해(金海), 양천(陽川), 태인(泰仁), 하양(河陽) 등이 있다.
  • 인천 이씨 - 허황옥(許黃玉)의 23세손 아찬(阿湌) 허기(許奇)를 득성조라고 하고 상서좌복야 이허겸(李許謙)을 시조로 하며 태인 허씨에서 분관되었다.

동조 동성 이본

  • 금릉 김씨 - 가락국 구형왕(仇衡王)의 셋째 아들 김무득(金武得)을 시조로 한다.
  • 진주 김씨 - 김유신(金庾信)의 차남 김원술(金元述)을 시조로 한다.
  • 무장 김씨 - 김수로왕의 56세손인 충절공(忠節公) 김선(金璇)을 시조로 한다. 일부 후손들은 김해김씨 장사군파로 칭하고 있다.

분적설

  • 남양 김씨 - 김수로왕의 후예로 고려 의종 때 사람인 김적(金頔)을 시조로 한다.
  • 웅천 김씨 - 김유신의 후예로 조선조에서 수의부위에 오른 김중재(金重材)를 일세조(一世祖)로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같이 보기

  • 김녕 김씨
  • 김해 김씨 (김충선)
  • 김해 김씨 (김성인)
  • 김해 김씨 (후김)
  • 금관가야
  • 경주 김씨

각주

  1. 김해김씨 삼현파 집성촌
  2. 김해김씨 율은공파 집성촌
  3. 김해김씨 판서공 불비(不比)파, 동정공파 집성촌
  4. 김해김씨 안경공파 집성촌
  5. 김해김씨 시중공파 집성촌
  6. 김해김씨 감무공파(사군파), 도사공 연(璉)파 집성촌. 낭산 김준연이 이곳 출신이며, 영암군수 김철호가 감무공파(사군파) 대종손이다.
  7. 김해김씨 좌정승공파 집성촌
  8. 김해김씨 양의공파 집성촌
  9. 조선 연산군대 탁영 김일손(金馹孫)의 사초에 수록한 「조의제문(弔義帝文)」(세조의 왕위찬탈을 비판한 내용)을 빌미로 훈구세력에 의해 일어난 사화
  10. 연산조의 학자 성현은 『용재총화』에서「옛날에는 성했다가 지금은 쇠한」씨족을 지적하는 가운데 김해김씨를 하나로 들고 있다.
  11. 좌정승공파 파조. 김해 김씨의 제주 입도조.


외부 링크